소개
시나리오는 영화의 뼈대이자 출발점입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세심하게 설계된 글로 존재해야, 훗날 카메라 앞에서 살아 숨 쉴 수 있습니다.
이번 블로그에서는 영화 시나리오의 기본 작성법과 함께, 한국 영화에서 자주 나타나는 ‘한국적인 시나리오 문법’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감정과 맥락, 그리고 침묵마저 말이 되는 한국 시나리오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시나리오 작성법
장면을 설계하는 글쓰기 영화 시나리오란 단순한 이야기 요약문이 아닙니다.
촬영 현장에서 곧바로 구현 가능한 기술 문서이자, 관객의 감정에 닿는 감성 서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나리오는 글이면서도 ‘영상 언어’로 쓰여야 하며, 다음과 같은 구성이 기본입니다:
시나리오 기본 구조 슬러그라인(Slug Line): 장소와 시간 표시. 예) INT. 학교 교무실 - 낮 액션(Action): 인물의 동작, 장면 설명. 예) 교감은 천천히 교실 문을 닫는다. 대사(Dialogue): 인물의 말. 예) “넌 왜 그렇게 조용하냐?” 부가 설명(Parenthetical): 대사 톤이나 감정 전달. 예) (작게, 한숨 쉬며) 시나리오는 보통 **3막 구조(기-승-전-결)**로 구성됩니다.
1막에서 인물과 갈등을 소개하고, 2막에서 갈등이 심화되며, 3막에서 절정을 지나 결말에 이릅니다. 또한 보여주기(Show)와 말하기(Tell)의 균형이 중요합니다.
좋은 시나리오는 대사보다는 장면으로 감정을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슬펐다"라고 쓰는 대신, ‘그녀는 말없이 도시락을 챙기다 젓가락을 내려놓는다’ 같은 식으로 표현합니다. 장면이 곧 감정이어야 합니다.
한국적 시나리오 문법
침묵, 정서, 여백 한국 영화에는 독특한 감정 언어가 있습니다. 그 언어는 말보다는 침묵에 가깝고, 극적인 전개보다는 내면의 파장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한국적 시나리오 문법에서 자주 드러나는 특징입니다.
1. 정서 중심의 서사 한국 시나리오는 갈등을 외부보다 내부에서 찾습니다.
이혼, 가족 갈등, 사회적 소외, 첫사랑 등 감정의 섬세한 떨림을 다루는 경우가 많죠. 『봄날은 간다』, 『건축학개론』 같은 작품은 사건보다 감정의 여운으로 진행됩니다. 이러한 정서 중심 시나리오에서는 대사가 줄어듭니다.
말하지 않지만, 알 수 있는 감정. 바로 ‘한(恨)’의 서사가 대표적입니다. 인물은 뚜렷한 외침 없이도 관객의 마음을 울립니다.
2. 시간의 유연한 흐름 한국 시나리오는 종종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조를 자주 사용합니다.
이는 감정의 기원을 설명하거나, 인물의 변화를 대비시키는 데 효과적입니다.
『화양연화』나 『8월의 크리스마스』처럼 정적인 전개에서도 감정의 밀도를 높일 수 있는 방식이죠.
3. ‘말하지 않는 것’의 의미 한국 영화는 때때로 중요한 전환점을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죽음, 고백, 이별 등 핵심 사건을 보여주지 않고도 충분한 감정 전달이 가능한 구조입니다.
시나리오 상에서도 이런 침묵의 장면은 “그는 아무 말 없이 걷는다.”, “그녀는 고개를 돌린다.” 같은 식으로 표현되며, 여백이 메시지가 되는 방식입니다.
한국 영화 시나리오의 대표적 사례
시나리오 구조와 문법은 각 영화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영화 특유의 감정 흐름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시』(이창동 감독): 극적인 장면보다 인물의 일상과 내면을 통해 죄책감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풀어냅니다.
『마더』(봉준호 감독): 장르적 요소와 정서적 몰입을 동시에 안고 가는 독창적 서사 구조. 『우리들』(윤가은 감독): 초등학생 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통해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을 표현. 이들 작품의 시나리오에는 대사보다는 상황과 정서, 침묵의 묘사가 중심이 됩니다.
이 점이 할리우드식 시나리오와 크게 다른 지점입니다.
결론
영화 시나리오는 단순한 이야기 문서가 아니라 영상으로 번역될 준비가 된 글쓰기입니다.
그리고 한국 시나리오는 그 안에 정서, 여백, 침묵이라는 독특한 언어를 담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한국 영화를 좋아하거나, 시나리오를 직접 써보고자 한다면, 장면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고, 말하지 않는 것의 의미까지 설계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한국적 문법은 말보다는 느낌을, 서사보다는 정서를 더 믿는다는 것, 그게 바로 우리의 영화가 가진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