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개봉작들은 여성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며 페미니즘, 젠더 감수성, 주체성에 대한 논의를 확장시켰습니다. 본문에서는 올해 주목받은 여성 주인공 중심 영화들을 바탕으로 현대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변화와 의미를 분석합니다.
1. 페미니즘 시선으로 본 2024년 여성 캐릭터
2024년은 여성 서사의 전환점으로 평가될 만큼 다양한 페미니즘적 시도가 영화에 반영된 해입니다. 여성 캐릭터는 더 이상 보조적 인물이 아니라 서사의 중심축이 되었고, 그 안에서 삶의 조건, 억압, 갈등을 주체적으로 풀어가는 인물로 그려졌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국내 영화 《비상구 없는 밤》과 해외 작품인 《Past Lives》, 《Poor Things》가 있습니다. 《비상구 없는 밤》은 여성 주인공이 가부장적 사회 구조 속에서 느끼는 심리적 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탈출이 아닌 ‘버티기’와 ‘대면하기’의 전략을 선택합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감정, 불안, 무력감마저도 정치적 언어로 전환시키며, 주체적 존재로서 여성을 재해석합니다.
이런 변화는 단순히 스크린 속 인물의 수가 늘었다는 차원을 넘어, 이야기 구조와 관객의 수용 방식에까지 영향을 줍니다. 과거처럼 남성 중심의 시선이 여성 인물을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여성 서사가 스스로의 시선으로 자신을 말하는 구조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는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여성 창작자의 참여가 활발해진 결과이기도 합니다.
감상자 역시 이제는 여성 캐릭터를 낭만화하거나 이상화하기보다, 현실적 삶의 맥락에서 이해하려는 감각이 요구됩니다. 페미니즘적 관점은 단지 여성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누구의 시선으로 누구의 이야기를 말하는가를 따지는 새로운 미학의 출발점이 됩니다.
2. 젠더 감수성과 캐릭터 구축 방식의 변화
젠더 감수성은 단지 여성 인물을 중심에 배치하는 것을 넘어, 인물 간 관계와 사회적 맥락 안에서 성별의 역할을 재구성하는 감각을 의미합니다. 2024년 영화들은 이 점에서 한층 정교해졌습니다. 남성과 여성, 여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구조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젠더를 다룹니다.
예를 들어 영화 《안녕, 나의 소녀들》은 여성 청소년 간의 우정과 충돌, 사회적 통제에 대한 저항을 담은 작품으로, 성장 서사에 젠더적 맥락을 입혔습니다. 단순한 ‘우정’이라는 감정 너머에 사회가 여성에게 부여하는 역할과 기대가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를 조명합니다. 캐릭터는 성별 이분법을 넘나들며, 그 자체로 젠더를 재정의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한 《Poor Things》는 여성 주인공이 과학 실험을 통해 재탄생하는 서사 구조를 통해 여성의 몸, 욕망, 지성, 자유를 재해석합니다. 이 작품은 여성의 욕망이 더 이상 억제되거나 배제되지 않고, 작품의 동력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성적 주체성’이라는 난제를 과감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젠더 감수성이 매우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젠더 관점에서 캐릭터를 감상할 때는 단순히 성별이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넘어서, 성별이 인물 간 관계와 갈등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특히 의상, 대사, 카메라 시점 등은 젠더 인식의 핵심 코드로 작용하므로, 섬세한 해석이 필요합니다.
3. 여성 주체성의 확장: 피해자에서 기획자로
최근 여성 캐릭터는 단순한 ‘피해자’로 그려지던 틀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건의 원인이 되고 해결자가 되는 주체로 서사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2024년에는 여성 캐릭터가 자신의 욕망과 판단으로 서사를 밀고 나가며, 주변 인물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주체적 존재로 부상했습니다.
영화 《셀피를 찍는 여자》에서는 SNS 속에서 이미지를 기획하고 소비하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이 캐릭터는 ‘보이는 존재’로의 전통적 여성상과 ‘보여주기 위해 설계하는 존재’로서의 주체성이 겹쳐져 있으며, 기존 여성 재현 방식에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는 단지 행동력 있는 여성 캐릭터의 등장이라는 차원을 넘어, 미디어와 현실에서의 여성 주체성까지 확대된 논의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Past Lives》는 감정의 주체로서 여성을 정교하게 묘사합니다. 이 작품에서 여성은 낭만적 관계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를 성찰하고 방향을 선택하는 ‘결정의 주체’로 자리합니다. 그녀의 감정은 수동적인 반응이 아니라, 능동적인 선택의 연속이며, 이는 감정 노동에 대한 고정관념을 전복시킵니다.
여성 캐릭터의 주체성은 더 이상 남성 캐릭터와의 대조 속에서 부각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 고유의 판단, 내면의 고민, 외부와의 관계 재설정 과정을 통해 서사적 동력을 형성합니다. 관객은 더 이상 여성 캐릭터를 통해 ‘희생’이나 ‘보호’를 기대하기보다는, ‘자기 결정’과 ‘변화’의 동반자로 인식하게 되는 흐름입니다.
2024년 영화 속 여성 캐릭터는 더 이상 주변 인물이 아닙니다. 그들은 주체로, 해석자로, 결정자로 스크린 한가운데 존재하며, 관객의 감정과 인식을 능동적으로 흔듭니다. 페미니즘과 젠더 감수성은 단지 유행이 아니라, 서사 구조와 캐릭터 구축의 중심 언어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보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선으로 읽어야 하느냐’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